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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사진이야기

사진이야기 운동의 표현

by 비엉 2016. 12. 4.

운동의 표현


화가인 에드가 드가는 동적인 한순간을 예리하게 표현하여 소묘가로서 독특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에밀 졸라의 영향을 받아 현실직시의 예술관으로 근대 리얼리즘을 개척하는 운동에 참여했다. 드가는 만년에 무용수에 관심을 갖고 춤추는 동작을 연구하기 위하여 사진을 이용하였따. 그 결과 움직이는 무용수를 표현한 수작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사진에서 운동의 파악이 얼마나 독특한 사진만의 표현력인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동감이 리얼리티와 얼마나 깊은 관련을 맺고있는가를 드가의 업적이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그대로 감광막에 정착시킨 것만으로는 운동의 표현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발달된 카메라와 사진재료를 동원하면 총구에서 튀어나오는 초고속의 총알마저 아주 손쉽게 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잡은 총알이 사진적으로 굉장한 동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보다 아주 느린 동작을 찍은 사진 중에 동감의 효과가 더욱 잘 나타나는 수가 많다. 카메라의 놀라운 기능에 의해 움직임을 고정시키는 것과 움직임을 잡아서 동감을 표현한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전자는 과학적 현상이며, 후자는 창의적 소산이라는 성질상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움직이고 있는 대상물이 없이는 운동의 표현을 못한다. 운동하는 현상이 있을 때 그것을 정확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카메라를 사용하되 어떻게 잡느냐의 방법에 따라 운동의 표현은 달라진다. 어쨌건 어느 쪽이든지, 동작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과, 동감을 실감나게 표현한다는 것은 드가가 연구한 것처럼 사진의 훌륭한 표현 능력임에 틀림없다. 앞서 해설한 텍스쳐의 묘사력과 함께, 이것은 사진표현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다. 

 움직임을 잡아 이 속에 동감을 나타나게 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공간화하는 것이다. 즉 현재라는 멈춘 시간이 아니라 앞뒤로 이어지는 시간의 공간화가 운동의 표현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과거와 연결된 시간의 순간과 미래로 뻗어 나아가는 시간이 복합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간화된 표현으로서의 시간이 성립되는 것이다. 또한 운동의 표현은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인 내면의 세계에까지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인 흐름은 순간적으로 감정이나 표ㅎ정으로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표정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교묘하게 포착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심리적 세계의 시각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제 이러한 운동표현의 특징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리얼리티를 참되게 부각할 수 있는 표현 능력이다. 현재라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어 인간의 내면성마저 엿볼 수가 있기 때문에 운동의 표현은 리얼리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인물사진을 예로 들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례로 영업사진가가 사진관에서 찍는 포트레이트는 일정한 구도 속에 사람을 맞추려 하기 때문에 움직임을 배제하고 대상을 포착한다. 다라서 모든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된 상태가 된다. 때문에 운동의 표현이 없어 시간의 공간화나 정신적 심리적인 흐름이 나타나지 않고, 매우 리얼리티가 결핍된 인간상이 되고 만다. 이처럼 영업 사진가가 찍은 포트레이트에서 생생한 인간성을 찾아 볼 수 없는 까닭은 운동의 표현이 빠졌기 때문이다. 한편 보도사진가가 찍은 인물사진이 일반적으로 생생한 인간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영업 사진가와는 달리 운동의 표현을 존중하여, 시간성이나 내면적 감정의 공간화를 꾀해, 리얼리티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운동의 표현이란 근대의 사진의 미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운동의 표현을 거부하는 것은 근대 사진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운동의 표현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 것인가? 앞서 말한대로 빠른 움직임을 잡기만 한다고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이란 얼굴 표정의 변화와 같은 심리적 흐름까지도 포함되는 넓은 의미의 움직임이 대상이 되는 것인데, 어떻게 잡느냐는 방법 여하에 따라 운동의 표현은 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경우 표정이나 동작을 어느 순간에 잡을 것인가 하는 시간의 선택에 따라 운동으 ㅣ표현이 살기도하고 죽기도 한다. 

 따라서 셔터 챈스가 운동표현의 열쇠를 쥐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camera angle)도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어떤 각도에서 대상의 움직임을 잡을 것인가 하는 앵글이 좋고 나쁘냐에 따라 운동의 표현이 크게 달라진다.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움직임도 적절한 앵글을 잡아서 표현하면 뜻밖의 신선한 효과가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대상의 프레이밍도 운동의 표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것은 이미 프레이밍의 항에서 자세히 말했기 때문에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으나, 요컨대 화면이 바깥 상황과 단절되지 않게 프레이밍하여야 운동의 표현이 나타난다. 반대ㅗㄹ 회화와 같이 화면의 바깥과 단절된 구도를 택하면, 아무리 움직이는 대상이라도 시간성을 느낄 수 없는 정적인 표현에 떨어지고 만다. 다라서 프레이밍의 효과는 운동의 표현에 큰 몫을 차지한다. 그리고 인간의 복합적인 움직임이 한데 어울리어 운동의 표현을 더욱 효과적으로 살리기도 한다. 얼굴 표정의 변화는 물론 손과 발의 움직임과 몸 전체의 자세 등이 종합적으로 표현될 때 인간의 내면적 감정의 시각화나 시간의 공간화의 놀라운 수확이 잘 거두어진다. 

 한 걸음 나아가 주위나 배경과의 관계도 고려해야한다. 즉 어떠한 상황 속에서 주체의 움직임을 포착할 것인가 또는 상황 그자체를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주제의 운동 표현효과가 매우 달라진다. 그리고 앞서 카메라 앵글이 운동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카메라 포지션도 도한 중요하다. 운동의 표현이란 성질상 다이나믹한 효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 때 부수적인 여러가지 소소한 움직임이 이와 엉클어져서, 종종 표현효과는 생기를 띠며, 표현의 설득력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므로 다이나믹한 운동과 세세한 움직임의 묘사가 구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포지션(position), 즉 대상에 더욱 파고 들어간 포지션이 운동의 표현을 한층 강하게 나타낸다. 특히 외면적인 움직임을 잡아 인간의 내면적 감정이나 심리적 흐름을 묘사하려는 운동 표현은 대상에 가가이 다가선 포지션이 필요하다 하겠다. 요는 대상에서 멀리 떨어진 포지션일 때는 주제의 움직임을 잘 포착해서 강조하여도 시각적 효과는 한낱 패턴으로 떨어지기 쉽다. 

 이와 같이 운동의 표현은 여러 수법을 통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실제로는 이 수법이 제가끔 따로따로가 아니라 두 개 이상씩 어울려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의 표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사진표현의 본질에 연결된 중요한 표현 수단이며, 또한 액츄얼리티를 나타내는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 때로는 임장감마저 느끼게 하는 표현 수단이다. 


기법의 통합


이러한 모든 기법은 한 가지만 개별적으로 구사하면 효과를 크게 거둘 수 없다. 실제로는 둘 이상의 기법이 함께 어울리어 효과를 올릴 수 있으며, 그 목적을 쾌히 달성할 수 있다. 서로 결합하는 방법은 테마나 대상ㅇ ㅔ따라 다르며, 작가마다의 스타일에 따라 기법의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카메라 앵글의 시각효과에 표현의 바탕을 두는 경우도 있고, 톤(tone)의 베리에이션(variation)과 클로즈업(close up)의 결합으로 이미지를 응축시키는 수도 있고, 또한 캔디드(candid)와 시츄에이션의 결합에 의해 테마를 전개하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해설한 각 기법을 단독으로 구사하여 기계적 표현에만 매달린다면 그리 좋은 결과는 기대되지 못한다. 다만 표현을 혼란에 빠뜨릴 뿐이며, 목적을 잃은 기법의 장난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각 기법의 미학적 성격이나 표현효과를 잘 파악하여 사용방법을 완전히 소화한 다음, 각각의 테마나 소재에 알맞는 결합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법은 각각의 목적에 딱 들어맞는 수단으로서 내용을 살리는 효과를 거두어야한다. 그리고 흑백사진과는 달리 컬러 사진에서는 색채의 기법이라는 것도 아울러 생각해야한다.

 현란한 색채를 포착하는 것만이 색채 표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흑백의 경우에도 빛에 의한 명암의 변화가 있어야만 미적효과가 생기며, 때로는 이것이 리얼리티를 심화시키는 것처럼, 컬러사진도 어두운 톤의 여러가지 미묘한 색의 계조를 살리고 다시 이를 명도가 높은 색과 결합시켜야 훌륭한 색채 표현이 된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의 컬러사진은 햇빛이 직접 닿아 밝게 보이는 부분을 원색적으로 잡은, 울긋불긋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컬러필름이 발전 도상에 있어, 어두운 톤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미묘한 색감을 살릴 만큼 발전되지 못한 과거에는, 이런 결점이 현저하게 눈에 띄었다. 즉 컬러 사진에 있어 색채 표현이란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소박한 생각을 해왔다. 이제 차츰 필름의 성능이 향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어두운 톤의 미묘한 색감에 관심을 쏟지 않는 사람이 많다. 

 또한 색채란 결코 한 가지 색만이 독립되어 있는 독립된 것이 아니고, 여러 색이 대비와 상보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색과 색이 서로 어울리는 조화이며, 이에 따라 개객의 색은 멋진 아름다움을 발하게 된다. 아무리 한가지 색을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도 그것만으로는 바람직한 표현효과가 되지 못한다. 화면 전체의 색채 구성과 질서를 고려하지 않으면 색의 미적 효과는 상실되며, 따라서 색채 표현은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고 만다. 

 이와 같이 색채의 문제도 문제지만, 컬러사진이라 해도 그 기본은 흑백사진과 다를 것이 없다. 컬러가 바뀐다고 해서 카메라 앵글의 의미가 달라질 리 없으며, 캔디드가 쓸모 없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츄에이션을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런 기법들은 중요한 표현수단이며, 이것들에 의해 비로소 색의 표현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컬러에 있어서도 앞머리에서 말한 대로 기법의 통합과 합일에 의해 표현의 성과가 증대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기법이란 관념적으로는 각각이 하나하나 독립된 것으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응용하는 마당에서는 통합해서 사용해야지 개별적으로 쓰일 성질의 것은 아니다. 

 한가지 기법만의 시각효과를 적극적으로 구사하여, 이것만으로 의도하는 바 내용을 표현하는 수도 종종 있다. 그러므로 머리 속으로는 각종의 기법을 분류하여 검토하기도 하고, 이것을 통합해서 구사할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막상 실제에 부딪히면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온갖 응용 방법이 머리를 들어 한 마디로 짧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아무리 여러가지 기법을 잘 알아 능숙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단순한 테크니션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방법만으로 훌륭한 형식은 이루어지나, 내용이 좋은 표현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훌륭한 방법의식을 갖고 이에 따르는 온갖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문제의식을 절실히 자각할 필요가 있다. 즉 테마의 모색과 영상의 모색은 깊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이 둘의 통일을 모색하는 것이 표현의 올바른 길이다. 따라서 뜻있는 영상을 모색하려면 테마에 대한 모색을 게을리하면 안되고, 만일 이들을 따로 떼어 생각하면 단순한 기술주의에 머무를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말한 표현의 뿌리로서의 여러가지 기법문제는 이러한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며, 여기에 참다운 응용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테마에 따라서 자기에게 필요한 표현의 행동양식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까르띠에 브레송은 '애매하고, 모순되며, 반조형적이고, 우연성을 표현했다'는 혹평을 받아가면서도 자기 나름의 독특한 프레이밍이나 톤을 도입하여 스냅이라는 행동 양식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한편 윌리엄 클라인은 이러한 까르디에 브레송의 스냅미학을 넘어서서 몽따즈, 톤 베리에이션, 세팅, 촛점흐림과 흔들림, 프레이밍, 캔디드, 클로즈업, 그리고 이밖의 온갖 근대 사진의 유니크한 기법을 통합하고 재평가하여 새로운 영상의 발견을 모색하였다. 말하자면 까르띠에 브레송보다 더욱 참신한 스냅의 행동양식을 창조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모두 스냅 미학의 실례를 든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훌륭한 작가라면 갖가지 기법을 왕성하게 소화시키고, 또한 표현을 위한 스스로의 행동양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즉 갖가지 기법에 십분 숙달하여 이를 몸에 붙이고 있어야만 놀라운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이제까지 말해온 기법의 문제도 이러한 각도에서 받아들여야 함은 물론, 그 기법과 표현의 접점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행동 양식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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