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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의/Photoshop 포토샵배우기

사진이야기 캔디드(cnadid) 세팅(setting)

by 비엉 2016. 11. 30.

캔디드(candid)의 미학 

 

30mm 카메라가 실용의 시대를 맞이한 것은 1930년대로, 이 정밀한 소형 카메라의 등장에 따라 사진가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행동의 자유를 갖게 되었고, 사진이 본디 바라던 순간적인 표현의 기동성이 바야흐로 문자 그대로 구사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정밀하고 가벼우면서도 모양이 작고 따라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별로 부담이 안가기 때문에, 사진가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마음대로 대상을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30mm판 카메라가 나와고도의 기계성이 발달되면서 사진가는 기게적인 제약이나 속박에서 벗어나 냉철한 관찰이나 상황의 미묘한 변화의 파악을 아주 자유롭게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해서 35mm 카메라의 출현은 사진가와 카메라 사이를 아주 이상적으로 밀착시켜 놓았다.

 30mm 카메라가 등장하믕로 인하여 드디어 사진의 특성이 다각도로 그리고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었으며, 여러가지 수법이나 기법이 새로 늘어나 시간과 공간의 표현을 더욱 확대시켰다. 이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캔디드의 수법이다. 이제가지는 연출을 하거나 어떤 틀에 맞추는 정적인 표현을 일삼아 왔으나, 35mm 판의 정교한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면서부터는 매우 생생하고 동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캔디드 수법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까르띠에 브레송에 와서 대표적인 사진미학으로 발전하였는데, 이 수법의 맨처음 개척자는 에리히 살로몬이었다. 그는 1928년 초기의 소형 카메라인 에르마녹스를 머리에 쓴 모자 속에 숨기고 남독일의 코브르그에서 열린 살인 사건의 재판장에 들어가 몰래 사진을 찍은 유명한 일화를 남겼는데, 이것이 캔디드의 시원이었다. 

그때부터 살로몬은 어디서나 남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보조광을 터뜨리지 않고 여러 정치 회의나 대중 집회 또는 극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나 가수를 잇달아 찍어냄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수상인 브리앙이 '국제 회의장에 꼭 필요한 것이 세가지 있는데, 그것은 몇 사람의 의무장관과 이들이 앉은 테이블 그리고 이 회의를 취재하는 살로몬'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캔디드 사진에 대한 인기는 대단하였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사진과는 다른,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에 감탄한 당시의 영국의 주간 그라프인 '그라픽'지의 아트 디렉터가 이것이야말로 캔디드포토(candid photo)라고 절찬한 말에서 '캔디드 포토'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다. 캔디드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공평한, 솔직한, 노골적으로 말하는 따위의 뜻이 있는데, 아무런 연출을 하지 않고 상대방이 눈치채지 않게 스냅하는 방법과 또는 이러한 방법으로 찍힌 사진을 그 뒤부터 캔디드 포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스냅이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이 소형 카메라의 등장으로 개척된 새로운 수법은 그때가지 회화의 나쁜 영향을 못 벗어난 사진의 표현에 일대 변혁을 가져와 특히 르뽀르따주 포토(reportage photo)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캔디드 수법의 특징은 순간의 비전을 영상적으로 정확하게 고정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즉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 일체의 꾸밈을 거부하는 역사의 일회성인 순간의 현실을 선명하게 기록하게 되었다. 또한 캔디드의 방법은 여러가지 포우즈를 취한 연출사진이나, 미리 구도나 그 밖의 구성적인 것을 잡아놓은 표현과는 달리 현장의 어떤 우연성이 적극적으로 화면에 개입되어있다. 그리하여 육안의 차원으로는 인식하지 못한 어떤 액츄얼리티나 혹은 우연성이 화면의 질서를 깨뜨려 작가가 미리 설정한 주제에 충격을 줌으로써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는데에 이 수법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즉 예기치 않은 우연성의 개입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순간의 비젼에 육박하는 것이 캔디드의 미학적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에리히 살로몬이 처음으로 시도한 캔디드 포토에 대해 당시의 사람들이 감탄한 것도 이제까지의 미학에서 기대할 수 없었던 순간적 비젼의 발견때문이었으며, 나아가서는 육안만을 신봉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버린 박력있는 현실감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의 편집인이 이와 같은 남에게 눈치채지 않는 방법에 의한순간적인 시각적 기록성에 감동하여 이것이야말로 캔디드 포토라고 단언한 것은 이 수법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실로 단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순간의 비젼을 포착하는 캔디드의 방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인간의 단편적인 상황을 잡을 수는 있을지언정,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에 육박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 인물사진가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연출 본위로 인물의 전형적 본질을 잡아내려고 머리를 쓴다. 그러나 캔디드가 단순히 순간을 포착하는데 그친다는 견해는 올바른 것이 못된다. 연출이라는 일종의 픽션에 의한 표현 방법으로도 인간의 진실에 깊이 파고들어갈 수 는 있겠으나 , 캔디드에 의한 순간의 비젼으로도 날카롭게 인간의 내면을 잡아내어 보편적인 표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캔디드가 단순히 순간을 잡는데 그치고 말았다면, 그것은 수법 자체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그것을 채택한 사진가의 표현력이 모자란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한다. 하여간 다큐먼트의 수법으로서의 캔디드가 강력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세팅에 의한 영상화 


이름없는 민중의 생활에 따뜻한 애정의 눈길을 쏟아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데 전념해온 유명한 사진가 유진 스미스가 언젠가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저널리스트와 종종 필연적 사실과 부딪혀 나아가야 하는 예술가의 두 가지 틈바구니에서 고민을 한다'고. 이것은 그가 보도 사진가로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을 충실하게 포착하는 것만이 반드시 그 속에 깃들인 본질적인 것을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때로는 단순한 현상의 표면만을 건드리는 결과로 그치는 수가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질적인 것을 잡아내어 그것을 충실히 설득력있는 예술적인 표현으로까지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실을 어디까지나 존중하면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손질을 해야할 딜레마에 빠지는 수가 있다. 즉 사진가의 문제의식이, 사실의 중시와 표현에 있어서의 예술성이라는 물과 기름의 대립적인 틈바구니에 끼어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유진 스미스가 말한 것이다. 이점을 좀 더 표현의 실제성에 비추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황을 세팅함으로써 표현을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세팅이라는 작의를 가함으로써 사실의 본질에까지 육박해 들어갈 수 있다는 방법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유진 스미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떤 상황에 따라서는 있는그대로 찍기보다는 얼마만큼의 세팅을 하는 쪽이 훨신 진실감을 잘 표현할 수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법론이므로 어느 경우나 무턱대고 세팅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극히 사실적인 기록을 꾀하는 경우에는 세팅은 고사하고 노파인더로 직접현실을 직시하는 방법마저 취할수도 있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잡지 않으면 기록성에 훼손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사실에 대한 맹신일 뿐이고, 때로는 세팅의 방법으로 사실을 보다 더 깊이 파헤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을 존중하는, 보도성이 앞서는 표현에 있어서도 이것은 중요한 수법이며 이러한 방법을 취함으로써 크게 성공을 거두는 수가 많다. 

 그렇다면 보도성을 띤 표현에 있어서의 세팅이란 어떤 것인가? 이보다 먼저 설명해 둘 것은 여기서 말하는 세팅이란 종래부터 일반적으로 연출이라고 불려오던 바로 그 말이다. 그것을 왜 세팅이라고 고쳐 부르냐 하면, 대상을 표현의도에 따라 인화지 위에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베푸는 인위적인 손질, 즉 사전에 대상으로서의 인물이나 상황에 다소간의 변경을 꾀하는 작ㄱ의성은 엄밀한 의미에서 연출이라고 할 만큼 복잡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진가가 테마를 고안하고 이미지를 떠올려 이에 맞는 소재를 골라 그것을 표현으로 옮겨서 찍은 필름에서 개개의 작품을 고른다음, 목적에 알맞는암실 작업을 해서 다시 편집을 행하는 전체으 ㅣ창작 행위가 진정한 뜻의 연출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암실작업 대신 포토샵 정도로 보면 되겠다. 따라서 촬영에 즈음하여 대상에 어떤 손실을 가하는 방법은 연출 중에서 한가지 수법에 지나지 않으므로 세팅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낟. 또한 연출이라는 어감은 가공의 사실을 조작하는 통속적인 의미로 해석되기 쉬우므로 세팅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성격을 제대로 반영할 뿐 아니라 또한 오해를 살 염려도 적다. 예컨대 절대비연출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 것은, 연출이란 가공의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며 현실을 짓밟는 일이라고 이해한 데서 온 저항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세팅이라고 바꿔 말한다 해서 오해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팅이란 사진의 경우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조작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현실에 밀착해서 그것을 관찰하는 보도적인 표현에 있어서, 세팅은 보다 더 현실적인의미와 내용을 살리려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무대에도 프레임(틀)이 있듯이 사진의 표현에도 프레임이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프레이밍하더라도 거기에 담긴 깊은 의미가 부각되지 않는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인물의 배치 상태를 사실 그대로 놓아 두고 촬영을 하면 아무래도 표현효과가 나지 않는 수가 많다. 이 때 프레임은 새로운 장소배치의 필요성이 생기며, 표현목적도 사실의 배치관계를 뒤바꿔야 할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세팅을 하는 편이 사실 그대로를 찍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리얼리티의 표현효과를 가져와 우리의 눈길을 끄는 수가 많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사실 그대로를 곧이 곧대로 포착했는데도 왠지 진실감이 모자라며,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하는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런 경우에는 그 광경의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인물의 배치고나계를 바꿀 수도 있는데, 이것은 사실을 보다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법으로 수긍할 만하다. 도한 이 밖에 다음과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어떤 관심이 쏠리는 인물이나 정경이 있다 하자.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주제로서 약하고 표현을 하기가 미흡할 경우 이와 대조가 될 만한 인물이나 정경을 대비시켜서 어떤 효과를 끌어내는 수도 있다. 이것도 사실을 존중하면서 표현효과를 살리기 위한 당연한 수단으로 인정되며, 때론느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하는 것이 현실을 묘사하는 데 성공을 거두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끌고 마음 속 깊이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즉 이와 같은 '사실'의 조작이 바로 세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팅도 사진가마다 현실을 대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 각각 다른 효과를 낸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어 유진스미스나 로베르 드아노는 가끔 사실을 세팅함으로써 뜻밖의 큰 효과를 내는 명수들인데, 이 두사람의 세팅을 하는 성격은 전혀 대조적이다. 

유진 스미스는 세팅을 할 때 매우 드라마틱한 효과를 노려서, 그 가운데에 민중의 일상적인 행복을 이야기하며 혹은 비참하거나 가난함을 호소하고 있다. 즉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는 그의 자세에 맞게 세팅의 수법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진 스미스의 세팅은 대단히 드라마틱하나, 로베르 도아노의 경우는 매우 문학적인 세팅을 하고 있다. 파리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커다란 사건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은 도아노는 오로지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주로 다루었다. 그도 유진 스미스처럼 즐겨 세팅을 구사했으나, 이를 통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나 위트가 넘치는 생활 감정을 묘사하여 유진스미스와는 전혀 이질적인 문학성을 살렸다. 그의 유머는 아주 재치가 있어서 보는 이의 눈길을 강하게 끌고, 세팅했음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재치있는 솜씨를 보였다. 아마도 그는 그러한 수법을 취함으로써 파리 사람의 전형적인 생활감정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팅은 이와 같은 스냅사진의 경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물사진에도 이 수법을 끌어들여 대상인물의 내면적인 인간성을 강하게 잡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섭카쉬가 찍은 영국 수상 처칠의 사진이 좋은 본보기이다. 이것은 여송연을 잠잘 때 말고는 언제나 입에 물고있는 처칠의 세팅인데 카쉬는 촬영을 하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서 처칠의 여송연을 점잖게 빼앗자 순간 신경이 곤두선 처칠의 표정을 재빨리 잡았다. 그결과 처칠의 이물사진에는 그의 강렬한 개성이 드러나, 루주ㅡ벨트같은 이는 '이것은 처칠의 최초의 커다란 패배이다'라고 말하며 카쉬의 솜씨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패션사진이나 광고사진의 영역에선느 사진의 성격상 세팅의 기술이 매우 중요시된다. 현실적인 공간이나 시간성을 떠나 스튜디오라는 특수한 공간속에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표현을 해야되는 이 장르에서는, 보도적 표현과는 다른 차원에서 착상과 감각을 세팅함으로써 그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세팅이라 하면 형태를 정돈해서 화면에 질서를 주기 위한 형식상의 테크닉, 즉 구도의 한가지 수단으로 알기가 쉽다. 분명히 성질상 그러한 효용성이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나, 세팅은 역시 이미지와 직결시켜 그것을 창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법이지 단순한 형식상의 테크닉은 아니다. 즉 기술적인 측면과 사진가의 내면이 서로 합일하는 양면의 의미를 세팅은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이렇게 생각할 때 세팅 수법을 이용하는 묘미가 무궁하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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